[안철수의 '반정치 콤플렉스' 비판②] '전문가 정치'='관료 정치'?



청와대 인사권 축소는 민주주의에 어긋난 일

나는 앞의 글에서 안철수 후보의 '새 정치'가 사실은 '민주주의의 부정'임을 살펴보았다. 이번 글에서는 그의 '새 정치'가 지향하는 바가 '민중에 의한 지배'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엘리트주의임을 말하고자 한다.

안철수 후보는 출마선언에서 자신은 "정치경험뿐 아니라 조직도 없고, 세력도 없지만 그만큼 빚진 게 없는 만큼 공직을 전리품으로 배분하는 일만큼은 결코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고, 이후 비슷한 공약을 내놓고 있다. 10월 7일 '정책비전 선언'에서는 청와대 인사권을 10분의 1로 줄이고, 청와대를 이전하겠다고 공약했다. 또한 8일에는 공천권 때문에 후보들은 국민은 보지 않고, 정당과 공천권자만 바라본다며, "공천권을 국민에게 되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 인사권이 10분의 1로 줄어들면 나머지 10분의 9는 관료들 마음대로 인사가 이뤄질 것이다. 과연 이게 옳은 일일까? 물론 대통령과 친하다고 무능력한 사람을 임명하거나 이명박 정부처럼 법의 테두리를 넘는 방식의 인사는 안 된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은 국민이요, 국민은 선거를 통해 국정과제를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만큼 대통령은 그러한 국민을 뜻을 국정으로 실현해야 한다. 그리고 인사는 그를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따라서 진보적인 정당이 진보적 공약으로 선거에 임해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면, 진보적 인사를 공직에 임명해서 공약을 실천하는 것은 국민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보수정당인 경우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미국은 선거결과에 따라 주요공직이 교체되는 '교체 임용주의(doctrine of rotation), 즉 '엽관제도(spoils system)'를 채택하고 있는데 반해, 한국은 직업공무원제의 성격이 강해 선거로 인한 공직 교체가 적다. 미국의 대통령은 군대를 포함하여 7만 5천 명을 넘는 공직자의 임명권을 보유한다. 미국의 교체임용주의는 1829년 잭슨 대통령 이후 정착되었는데, 이는 공직을 널리 국민들에게 개방함으로써 진정한 국민의 의사를 국정에 반영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관료에게 정치가의 역할을 담당하게 해서는 안 돼

안철수 후보에게 정치ㆍ정당ㆍ정치인은 나쁘고 줄여야 하는 존재인 반면, 관료ㆍ엘리트ㆍ전문가는 좋고 늘려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는 안 후보가 정치ㆍ정당ㆍ민중에 대해서는 불신을, 관료ㆍ엘리트ㆍ전문가에 대해서는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한국 관료는 믿을 만한가? 전문가들은 항상 객관적이고 옳은가? 

그렇지 않다. 한국의 관료들은 스스로를 목민관(牧民官)이라고 부른다. 국민을 기르고다스리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뜻대로 하면 우리나라의 주인은 국민이 아니다. 주인은 관료다. 국민은 단지 다스려지고 길러지는 대상이다. 지난 10년간의 민주정부가 기대에 못 미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이들 관료에게 국정이 장악되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 이라크 파병 등은 모두 관료들의 작품이었다. 이명박 정부조차 초기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관료들에 의해 포획되고 말았다. 우리나라 관료들은 그들 간의 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정권을 넘나들며 강한 생존력과 자기보호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민주주의 하에서도 관료가 광범위한 국가 자율성을 향유하면서 정책의 결정과 집행에 커다란 재량권을 갖는다면, 도대체 선거를 통한 민중의 지배라는 민주주의가 권위주의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막스 베버는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행정적 관료에게 정치가의 역할을 담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타고난 관료인 사람,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의 관료적 품성을 타고난 사람이야말로 나쁜 정치가일 수밖에 없으며, (책임 개념이 가진 정치적 의미를 기준으로 볼 때는) 무책임한 사람이고 그런 의미에서 도덕적으로 저열한 정치가들이다."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폴리테이아. 151쪽)

안철수의 전문가주의, 엘리트주의는 심각한 수준

안철수 후보의 전문가 사랑, 엘리트 사랑은 대단하다. 그 사례가 곳곳에서 나타난다. 10월 7일 안철수 후보는 야권단일화의 방법으로 세 가지, 즉 ①현장의 국민 목소리, ②전문가 평가, ③여론조사를 들었다. 주목할 점은 안 후보가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경선 방식인 전문가 평가를 거론했다는 점이다. 참고로, 정치권에서 일반적으로 시행되는 경선방법은 3가지다. 당원 경선(일반당원 경선, 대의원 경선), 국민 참여 경선(현장투표, 모바일투표), 여론조사가 그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전문가 평가 경선이 민주주의 투표의 4대 원칙 중 그 첫 번째인 보통선거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보통선거란 사회적 신분ㆍ교육ㆍ재산ㆍ인종ㆍ신앙ㆍ성별 등의 제한 없이 일정 연령이상이면 모두 선거권을 주는 것이다. 도대체 안 후보가 생각하는 전문가의 기준은 무엇일까? 정치에서 왜 전문가가 국민과 달리 더 특별한 대접을 받아야 할까? 

안 후보는 출마선언문에서도, 이후 발표문에서도 전문가라는 표현은 반복된다. 그리고 그 모두에서 전문가는 잘못된 정치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요, 해답이다. 안 후보는 출마선언문에서 잘못된 정치를 극복하기 위해 "현명한 국민들과 전문가들 속에서 답을 구하고, 지혜를 모으겠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 한 언론은 안 후보의 말이 다른 정치인들과 달리 외래어와 전문용어를 습관처럼 남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상훈 후머니타스 대표는 안철수 후보의 엘리트주의에 대해 이렇게 비판했다. 

"지금 안철수 캠프에 법률가, 전문가, 엘리트는 보이는데 그가 대표하는 사람들이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되면 시민들이 안철수 후보를 견제할 방법이 없다. 정당은 당원이 있고, 지지하는 노조가 있고, 자영업자들의 요구가 있다. 그 안에서 경쟁이 이루어지는데 안철수 후보는 다르다. 기반이 없고 기대할 수 있는 건 '개인의 선의'뿐이다. 통치자의 선의에 의존하는 체제가 군주정이다. 아직까지 안 후보는 군주정과 엘리트 중심의 귀족정 원리가 결합해 있는 형태로 밖에 안 보인다." (2012. 10. 1 미디어오늘 인터뷰) 


정치를 선악의 문제로 보는 것은 아닌지 우려돼

지금 안철수 후보는 여러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그 공약에는 정당의 기반이 없는 무소속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과 대통령 인사권의 10분의 9를 관료에게 넘겨주겠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그러고 나면 도대체 무슨 힘으로 공약을 실천할 수 있을까? 도대체 무슨 힘으로 대한민국의 실질적 지배자인 재벌을 상대로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그리고 복지국가를 실현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안철수 후보가 주는 답은 후보 개인의 '선의'와 '진심'이다. 

안철수 후보는 출마선언문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진심"이고, "진심의 정치를 하겠"으며, "사람의 선의가 가장 강력한 힘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안철수 캠프의 명칭을 '진심캠프'로 정했다. 보통 국정철학을 내세우는 것이 일반적인데, 후보 개인의 '진심'을 내세우는 독특한 캠프 명칭이다. 

안 후보가 자신의 '진심'을 특화하는 것이야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다만, 그가 정치를 선악의 문제로 보는 것은 아닌지 우려될 뿐이다. '반정치주의'는 정치를 쉽게 선악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안 후보는 최근 한국 정치가 국민을 분열시켜서 자기 세력의 이득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비판했다. 

"정치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탄식하는 국민들의 한숨이 들리지 않습니까? 자신들의 주의 주장이 아무리 소중하다고 해도 국민의 눈물과 고통 앞에 하찮은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자기 세력의 이익이 그렇게 소중하다면, 정치가 아니라 차라리 이익이 남는 장사를 하거나 사업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10월 7일 『안철수 후보 정책비전 선언문』 중에서)

그러나 과연 정당이 자기의 노선과 주장으로 정권을 획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나쁘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거꾸로 노선과 주장도 없고, 정권 장악 의지도 없는 정당이 존재가치가 없는 것 아닌가? 안철수 후보는 정당정치 자체를 악으로 보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오히려 나는 진심이고, 상대는 진심이 아니라고 접근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 정치인은 나도 틀릴 수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 샤츠슈나이더의 말대로 "민주주의란 스스로가 옳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체제"다. 그렇지 않으면 정당한 비판조차 악의적인 네가티브 공격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더구나 교과서에 실릴 만큼 살아있는 위인으로 대접 받아 왔던 안철수 후보이기에, 앞으로 그에게 제기될 여러 비판은 그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일이 될 수 있다. 

안철수 정치의 지향점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엘리트주의

앞에서 여러 측면에서 살펴본 것처럼 안철수 후보가 내세우는 '새 정치'는 정치의 본질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본질도 부정하고 있다. 안 후보의 '새 정치'가 실현된다면 한국정치는 붕괴되고, 민주주의적 국가시스템은 마비되고 말 것이다. 종합적으로 볼 때, 안철수 후보가 지향하는 정치는 제도와 시스템에 의한 정치체제, 즉 민중에 의한 지배인 민주주의가 아니라 통치자의 선의에 의존하는 정치체제, 즉 관료ㆍ전문가ㆍ엘리트에 의한 지배인 엘리트주의의 측면이 강하다. 

그리고 안 후보의 이러한 주장의 바탕에는 아주 심각한 수준의 '반정치주의', 즉 정치는 나쁜 것이요, 가능하면 줄어들어야 한다는 사고가 깔려 있다. 그는 정치를 '국민 대 정치'의 프레임으로 바라본다. 국민이 살기 위해서는 정치를 최소화해야 하고, 정치가 커지면 국민이 죽는다고 본다. 안철수 후보에게 있어 '반정치주의'는 거의 '반정치 콤플렉스' 수준이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 대통령의 첫째 조건은 민주주의 신봉과 민주주의에 대한 폭넓은 이해다. 그러나 최근 안철수 후보의 주장을 보면, 안 후보는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은 물론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도 없었고, 심지어는 민주주의를 신봉하지도 않는 듯 보인다. 그는 인류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피나는 투쟁을 통해 '민중에 의한 지배'인 민주주의를 실현해 왔고, 그 과정에서 군주정과 귀족정, 독재와 엘리트주의에 맞서 힘겹게 싸워왔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이제 많은 이들이 안철수 후보에 대해 우려했던 바, 정치적 경험의 부재가 가지는 위험성이 현실로 드러났다. 그는 민주주의의 원리, 시스템, 작동 방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치의 최고봉인 대통령에 출마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정치적 덧셈ㆍ뺄셈도 모르면서, 미분ㆍ적분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더욱 위험한 것은 그런 그가 '정치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정당과 정치를 악으로 공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의 정치적 무능력을 감추고, 자신의 정치적 무경험을 '새 정치'로 포장하고 있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적극적 정치로 국정을 책임지고, 국민의 삶을 책임져야 할 대선후보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야말로 '반정치 콤플렉스'의 발로일 뿐이다.


/유창오 새시대전략연구소 소장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20121014152205&Section=01




Posted by 고리니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