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산업계에 대한 나쁜 소식 없이 지나는 날이 하루도 없을 정도다. 캐논 같은 몇몇 기업은 예외지만 업계 거물급 기업들은 현 회계연도에 170억 달러의 손실을 볼 것으로 예상된다. S&P는 소니와 샤프에 대한 신용등급을 BBB+로 하향조정했다. 정크(투자 부적격) 등급과 겨우 두 단계 차이다. 기업 경영진들은 엔화 강세 탓으로 돌렸지만 이는 이기적인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엔화의 높은 명목상 가치는 왜 소니가 (엔화 약세기를 포함한) 지난 8년 연속 TV부문에서 손실을 입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없다. 또한 왜 트랜지스터 라디오, 워크맨, CD, VCR 등의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었던 기업이 이젠 아이디어가 고갈되어 보이는지에 대한 설명도 될 수 없다.

지난 10년간 일본 전자업계의 추락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2000~2010년 사이 제품 생산은 41% 하락했고, 수출은 27%, 그리고 무역 흑자는 68%나 곤두박질쳤다. (중국의 영향을 피하기 위해) 고소득 OECD 국가들만을 상대로 수출을 살펴본 결과 일본 전자제품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1996년의 19%에서 거의 절반이나 줄어든 10%였다. 같은 기간 독일은 8%에서 11%로, 한국은 6%에서 9.2%로 증가했다. 직접적인 원인은 수준 미달의 제품 전략이다. 일본 기업과 정부는 하버드 교수인 마이클 포터의 두 가지 중요한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첫번째는 국가 경제가 원숙해짐에 따라 경쟁상의 이점을 좌우하는 원천도 변한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에는 풍부한 숙련 근로자층, 값싼 자본, 그리고 가격이 경쟁을 좌우하지만 나중에는 제품 혁신과 가공으로 대체된다. 두번째는 전략을 세울 때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제품을 만들지 말아야 하느냐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이런 가르침을 거부한 채 제품 혁신이 아니라 값싼 자본과 제조력을 놓고 삼성 같은 후발주자들과 경쟁하려 했던 것이다. 그리고 비록 이전에는 세계를 제패했으나 이제는 해가 갈수록 손실만 보는 제품을 계속해서 만들었던 것이다. 일본 전자업계가 생산하는 제품의 40%는 여전히 소비자 오디오-비디오 제품과 반도체

게다가 기업이나 제품이 실패했을 때 일본의 통상적인 해결책은 합병이다. 때로는 정부 자금까지 동원된다. ‘실패한 기업 세 곳을 합병하면 규모의 경제에 입각해 하나의 성공적인 기업이 탄생한다’가 이론적 근거였다. 지난달 파산신청을 하기 전에는 일본 최대 DRAM 칩 제조사였던 엘피다는 이 실패한 컨셉의 전형적인 사례다. 히타치, NEC, (이후) 미츠비시의 DRAM 사업부문에서 분사해 나온 기업이기 때문이다.

일반상품화된 칩 시장에서 빠져나오는데 실패하면서, 세계 상위 20개 반도체 제조사 가운데 일본 기업의 시장점유율은1990년의 55%에서 2010년에는 24%까지 작아졌다. 일본은 종종 삼성을 탓하지만 실제로 같은 기간 미국 기업의 시장 점유율은 31%에서 51%로 커졌다. 인텔과 텍사스 인스트루먼트 같은 기업이 새로운 표준이 될 만한 혁신적인 제품에 주력하기 위해 가격이 핵심인 칩 사업에서 손을 뗐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에서 생산되는 전자제품의 77%는 거의가 다른 회사 제품에 사용되는 부품 및 구성요소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팟이나 아이패드, 삼성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을 원가분류해 보면 부품 제조사가 아닌 제품 제조사가 돈을 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 기업들은 애플, 인텔,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경쟁해야 할 때에 삼성을 상대로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오디오-비디오 시대에 계속해서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던 일본 기업의 기술과 정신은 디지털 시대에 와서 무너졌다. PC로든, 스마트폰이나 소프트웨어로든, 일본 기업은 이제 더이상 선두주자가 아니다.

노벨수상자이기도 한 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만은 왜 어떤 기업들이 한물 간 프로그램을 계속 살려두기 위해 돈을 쓰고, 그 결과 새로운 프로그램에 쓸 돈이 부족한 상황을 초래하는지 설명한다. 그는 이런 기업을 돈을 잃으면서도 잃은 돈을 만회할 때까지 도박판을 떠나지 못하는 겜블러에 비유한다. 이런 기업의 사장은 자기가 자리를 옮길 때까지 손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한다.

여기가 바로 미국과 일본의 기업구조 차이가 얼마나 큰 결과적 차이를 가져오는지가 갈리는 부분이다. 미국의 경우 신기술은 보통 구기술에 아무 금전적∙감정적 미련이 없는 신생기업들이 주도한다. TV나 중간규모 컴퓨터 시대를 이끌던 기업들은 이제 더이상 존재하지도 않는다. 현재 상위 21위 미국 전자회사 가운데 8곳은 1970년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6곳은 10년전에는 포춘 500에 들기엔 규모가 너무 작은 회사였다.

반면 일본의 경우 반세기가 넘는 시간동안 상위권에 새로 진입한 신생기업은 하나도 없다. 신기술이 부상하면 파나소닉, 소니, 샤프, 후지쯔, NCE 같은 기업이 부서를 새로 만든다. 그리곤 과거와 미래 사이에 끼어 ‘창조적 파괴’를 지연시킨다.

자동차 같은 특정 업계에서는 일본식 접근법이 우세할 지 모르지만 디지털가전처럼 급속히 변화하는 분야에서는 통하지 않는 접근법이다. 도쿄에 있는 애플 스토어에 얼마나 많은 일본 젊은이들이 몰리는지 한번 보라. 반대로 소니 스토어에는 얼마나 적은지도 말이다.

http://realtime.wsj.com/korea/2012/03/23/%EC%9D%BC%EB%B3%B8%EC%9D%B4-%EC%A0%84%EC%9E%90%EC%97%85%EA%B3%84-1%EB%93%B1%EC%97%90%EC%84%9C-%EB%B0%80%EB%A0%A4%EB%82%9C-%EA%B9%8C%EB%8B%AD/


Posted by 고리니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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